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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by Shinbibi 2024.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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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주말에 일하는 나는 회사원 친구들과 일정 맞추는게 어려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경험이 주는 설렘보다는 그냥 편안하게 쉬는, 오롯이 휴식을 즐기는게 더 반가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예전보다 훨씬 여행이 점점 더 간소해지고 있다라는 걸 느끼곤 한다.
옛날에는 지도를 펼쳐놓고 꼼꼼히 동선이며 위치며 체크해가며 여행을 했지만,
이제 우리는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모든걸 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숙소도, 가고 싶은 식당이나 카페도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가 수두룩빽빽하게 검색결과에 줄지어 나온다.
한 두개의 후기만 읽어도 이미 벌써 다녀와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처음에 가보고 싶었던 마음도 온데간데 없어져버린다.
이건 어쩌면, 계획여행의 치명적인 단점일 수도 있겠다. 이렇다보니 좀 알아보려고 해도 결국엔 가고픈 마음이 사라져 버린다.






계획없이는 절대 어디든 떠나지 않던 내가, 딱 한번 무계획으로 제주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는 번아웃이 심하게 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신이 지쳐있었다. 비행기표와 숙소만 결제해두고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았다.
아니, 알아볼 힘 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안되면 그냥 숙소에서 쉬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좀 놀랐다.
일정을 짜지 않으면 불안함에 못 견뎌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말하고 있지. 지나서 생각해보니 그 때 진짜 힘들었나 보다.

제주도에 도착하고 나서도 어딜 가야할 지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그냥 ‘바다가 보고 싶다’ 라는 막연한 생각만 떠올랐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애월쪽으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왔더니 많은 것들이 바뀌어있었고, 나 혼자만 옛날의 제주도 기억을 안고 온 시간여행자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단은 바닷바람을 쐬니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풍경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된다는건 참 다행인 일이다.

그리고 푸르기로 유명했던 협재 해수욕장에 갔다. 여기저기서 웨딩촬영이 한창이였는데,
보면서 또 노인네처럼 미소지으며 ‘ 좋을 때구먼~ ’ 이라고 생각하며 뒷짐지고 걸어다녔다.
손을 어디에 수납하지 못할 때에는 왜 자꾸 뒷짐이 지어지는건지 원, 나도 알 수가 없다.

찬 바람을 오래 쐬서 인지, 아니면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인지. 다음날 나는 크게 아팠다.
여행와서 아프다니 최악인데. 평소라면 억울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나갔을텐데 그 날은 그냥 마음이 쉽게 놓아졌다.
그냥 쉬자. 쉬는 것도 여행의 일정이라고 치지 뭐.

예약해두었던 버스투어도 새벽에 취소해버렸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투어에 묻어가려고 했는데 이 마저도 안될 정도로 열이 끓는 상태였다.
아침에 시내에 있는 병원에 들려서 약을 타고, 간단히 방에서 먹을 것들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약 먹고 자려고 누웠는데 밝아서 잠도 안왔다… 결국 호텔방에서 블로그 포스팅만 죽어라 올렸다.
친구들은 하루 더 연장해서 제주를 마저 즐기고 오라고 했지만, 몸이 아프니 오히려 집에 너무 가고 싶어졌다.
얼른 가서 내 침대에 눕고 싶다 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제 제주도는 안 갈것 같다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너무 많이 가기도 했지만 예전과 많이 달라져버린 제주가 낯설었고, 제주만의 특색이 여러모로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뭐라고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긴 어려운데 여튼 그렇게 느껴졌다.
제주도를 열렬하게 사랑한 편도 아닌데 이상하게 이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희한하게도.

그렇게 마지막 날은 거의 호텔에서만 있다가 여행이 마무리 되었다. 내가 했던 여행들 중 역대급으로 아무것도 안한 여행이다.
그래도 좋았다. 여행오기 전에 내내 도망가고 싶다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핑계로 잘 숨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있는 시간이 좋았다.
사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할 거란걸 알면서 왜 나는 매번 혼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걸까.
가끔 나는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언젠가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다.
계획이 실패해도 분명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게 될테니까. 그럼 실패한게 아닌게 되니 말이다.
이번에 하지 못했다면 다음을 기약해도 되는 거고. 시간에 쫓기지 말고 여유를 갖자.

당신도 나도 우리모두 그정도의 여유는 가지며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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