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내가 왜 직장생활을 힘들어 하는 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냥 단순히 하기 싫은 일을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였겠거니-하고 가볍게 넘겼었던 것 같다.
30대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깨달았던 것은 나는 생각보다
일을 높은 우선순위로 두는 사람이였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재미와 성취를 느껴야하고,
누군가에게 필요하거나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것이였다.
그냥 텍스트 그 자체로만 본다면 굉장히 노력파 인간스러운, 딱 직장생활에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지만
이러한 성격때문에 스스로를 희생해서 극한의 상황이 될 때까지 밀어넣고선 지쳐서 번아웃이 찾아오는 게 문제였다.
매번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이직과 입퇴사를 밥먹듯이 했다.
오죽하면 내가 생각해도 이력서가 지저분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보다 성실하지 않은 동료들을 보며 경멸할 때도 많았고, 노력이라곤 조금도 하지 않으면서
불평만 하는 모습에 한심함을 느끼고 그들을 무능하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남들이 하기 싫어서 미루는 일들을 도맡아 하면서 ’ 마음만 먹으면 금방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다들 하지 않고 미루는 거지?‘
하고 생각하며 혼자 내면의 화를 삭히는 일도 빈번해졌다.
나의 노력을 누군가 한 명 정도는 알아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도 해보았지만 정작 돌아보고 나면 아무도 없었다.
선임들은 내가 부득부득 노력해서 일을 쳐내면 기다렸다는 듯이 더 많은 일을 던져줬다.
그렇게 일이 점점 늘어나다 보니 몸도 힘들지만 마음이 자꾸만 병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은 출퇴근하는 이동시간이였다.
그마저도 시간이 흐를수록 잠깐 눈을 붙이는 시간으로 변질되어버렸다.
집은 정말 잠만 자고 씻고 나가는 공간이 되어버렸고, 자려고 누우면 뭔가를 해냈다 라는 성취감보다는
‘오늘은 내가 도움이 됐나? 나는 이 회사에서 쓸모있는 사람인가? 실수 없는 하루였나?’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실수했던 순간이 있거나 스스로 판단했을때 마음에 들지 않은 순간들이 떠오르면 눈시울부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참했다. 아무리 노력을 거듭해도 부족하기만 한 것 같고 만족이 되질 않았다.
급기야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당시 의지하고 있던 상사분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제가 지금 잘하고 있는게 맞나요? 전 잘 모르겠어서요.’
감사하게도 격려와 응원의 말을 들었지만, 내게는 이제 그런 말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 상태였었다.
일하다 말고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와 쉽게 멎지 않을 때도 있었고, 어떤 순간에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자꾸만 입으로 나도모르게 ’도망가고 싶다‘ 라는 말을 자주 하기도 했었다.
나중에는 에너지가 소진되어 친구들조차도 만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방에 누워있는 날이 늘어났다.
사실 머릿속으론 이미 알고 있었지만 두려워서 계속 모른척 했었는데 어김없이 또 찾아와버렸다.
나 번아웃이구나.
슬그머니 찾아온 번아웃을 계속 모른척 했던 건 어린 시절에 겪었던 번아웃이 너무 충격적이였기 때문이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 때는 어딘가 놀러가거나 맛집을 찾아다니기 바빴던 때였는데 정말 아무런 의지가 들지 않았다.
배고프면 대충 끼니를 때우고 계속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잠이 오면 잠을 자고, 잠이 안오면 다시 가만히 누워있고.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도 같이 왔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가끔 몸을 일으켜서 핸드폰을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겨냈는지의 과정이 조금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스스로 생각했을때 그 사건이 너무 충격적인지라 아예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잊어버린게 아닐까 싶다.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감정과 상태였는데… 또 다시 아무것도 내가 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계속 몸이 보내는 신호를 못 알아챈 척 일상을 버텨왔을지도 모른다.
옛 직장동료들과 식사자리를 가졌던 날, 누군가가 내게 ‘요즘 일하는거 어때?’ 라고 묻자마자 내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 때 비로소 다짐을 했다. 아, 나 회사 그만둬야겠구나.
결심을 하기까지는 생각을 과하게 많이 하는 편인데, 결론을 내린 순간 그 누구보다 빠르게 행동해버리곤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퇴사해야겠다 결론이 나버린 순간 바로 면담하고, 보고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퇴사일자를 가르쳐주며 만남을 약속했다.
누군가는 그만두면 뭐할거냐, 이렇게 대책없이 퇴사하면 안된다고 걱정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간 고생한게 너무 아깝지 않냐고 묻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나이가 있으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만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 내가 내린 결심은 그 누구도 꺾을 수는 없었다.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다른 직업을 찾는 중이지만 어쨌든 회사에서 아등바등하던 때보다는 아주아주 가벼운 마음이다.
이미 몇 번 겪어봤다고 내성이라도 생긴걸까?
불행중 다행으로 다시 겪게 된 번아웃은 예상보다는 견딜만 하다. 전보다는 비교적 마음이 덜 힘들기도 하고.
앞으로를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역시나 난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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